자유로운 글

조선의 풍류 - 백호 임제

낙천지명 2016. 5. 13. 19:12



조선을 대표하는 로맨티스 즉, 조선 제일의 풍류객들을 순서없이 만나 봅니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무었으로 뭇 여성들의 맘을 사로잡았고 

대높은 기생들을 어떻게 이불속으로 끌어 들이는지 기막히고 절묘한

재치와 해학이 넘쳐나는 최고의 풍류객들의 일화를 찾아 떠나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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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인물로 백호 임제 (白湖悌) 편입니다.        

임제(1549~1587, 38 )는 동양의 세익스피어라고 할 만큼 대문호이며 위대한 시인이었다.

그의 문학적 위대함과 일화들은 너무도 많아 다 소개하지 못해 아쉽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그의 여성관 그리고 '姓意識' 에 관한 일화들만 소개해 봅니다.

그는 당시 벌써 자유 연애사상을 가진 인물로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 하늘이 준 권리요 자연의 순리인 남녀간의 사랑을 억누르는 것은 죄 " 라고 생각하였다.

타고난 풍체에  세상을 놀라게 하는 글재주와 뭇 기생들의 가슴을 태우는 음률의 달인이었다.

 

< 전남 나주에 있는 "영모당" 이다.  26세부터 38세까지 12년을 살다간 곳이다. 

이곳이 1,000 수의 시를 남기고 간 천하의 명당이다.  흰 겨울햇살이 내려 비추이는 

영모당 전경에는  아직도 백호의 거문고 소리가 고목을 휘감아 도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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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28세때 춘삼월 어느 날 한양에서 술에 만취해  수원의 어느 주막까지 가게 되었는데 ...

그 집 주모가 너무나 예뻐 하루밤을 동침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서방에게 발각되어 맞아 죽을 지경에 이르자 

그는 시 한 수만 짓고 죄를 받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청하자   

 서방이 허락함에  지은 즉흥시 다.

 

     昨夜長安 醉酒來  -  어제밤 장안에서 술이취해 여기가지 오니

桃化一枝 爛漫開  - 복숭아꽃 한 가지 요염하게 피었구나 !

  君何種樹 繁華地  - 누가 이 꽃을  번성한 거리에 심었는가 ?

      種者非也 折者非  - 심은자가 잘못인가 ?  꺽은자가 잘못인가  ?

 

백호는 시를 짓고 그 서방이 읽을동안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요염한 도화곷(마누라)의 유혹  

뭇 남성들이 번성한 술집에 마누라를 둔 자신의 잘못도 있음을 꼬집는 글귀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를 용서하게 된다.

이것이 시 한수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는 임제의 유명한 일화다.    


  

고리타분한 선비나 시정잡배들은 황금으로 기생을 매수하려다 호되게 당하지만,  

조선의 멋쟁이 풍류객들은 절대로 황금으로 여인들의 마음을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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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제일의 기생 한우(寒雨)는  오죽 콧대 높고 쌀쌀 맞았으면 찬비라 했겠는가  ?

 임백호가 한우를 유혹하는 장면 또한 일품이다.

저녁무렵 한우의 집 담장에 기대어 옥퉁소를 기막히게 한가락 불고는 시조 한수 읊는다. 

             북창(北窓)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가니     

 산에는 눈이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여기서 찬비는 당연히 한우다.  추워서 얼어 자게 되었다 고 넌지시 유혹한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 어이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무슨일이요~   내 그대 언 몸 녹여 함께 잘까 하노라~  라고 화답하여 청을 받아 들인다.

  가히, 才子와 佳女의 난만한 수작  즉, 호걸과 명기의 찰떡궁합이 조우하게 된 것이다.  

 

 

 

 

그후  임백호는 한우가 붙잡는 옷소매를 무정하게 뿌리치고 떠나게 된다.

 불같이 뜨거운 사랑에 노예가 되어 풀섶의 바람처럼 스처간 짦은 한순간의 인연을 간직한 채...

한우는  평생 임백호를 그리워 하다 결국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한다.  

 

 

 

임백호는 39세 38년의 짧은 생을  풍운아로 살다간 대 풍류가객이었다.

당대 문장가이며 시에 능했으며 거문고와 옥퉁소, 그리고 늘  칼을 차고 다닌

호걸풍의 무인이기도 했다. 그는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는데 

 셋째딸의 아들이 숙종때의 대 정치가 미수 허목이다. 

허목은 남인의 우두머리로 우암 송시열과 쌍벽을 이루던 정치의 거목이었다. 

허목의 외 할아버지가 임백호 인 셈이다.

임백호와 동시대 교류했던 인물로는 송강 정철, 서산대사 등 이며  

 남명 조식등에게 성리학을 사사했다.  

 백사 이항복은 젊은 한 제자가 여성문제로  임백호를 폄하하자 크게 호통치며

꾸짖었다고 하니, 그의 학문의 깊이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케 하는  큰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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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조선 최고의 연애편지" 에서 임제와 황진이의 관계를 한번 풀어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