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되는 예술작품은 海東書聖이라 칭하는 통일신라 성덕왕 때 金生(711~79?)입니다.
우리민족 서예의 영원한 祖宗으로 현 시대까지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중국 동진때 왕희지(307~365)를 능가하는 인물로 평가되지만 알려진 바는 미흡하다.
그는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80이 넘은 나이에도 글쓰기를 쉬지 않았다 한다.
예서, 전서, 행서, 초서 각체가 모두 신묘한 경지에 들었지만 전설로만 전해지다가
요근래에 이르러 그의 글씨가 하나 하나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고려학사 홍관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갈때 김생의 행초 두루마기를 가지고 가 보여주자
" 뜻밖에 오늘 왕희지의 친필을 보는구나 (不圖今日得見王右軍手書) " 라 하였다. 이에
홍관이 " 아니다 신라사람 김생의 글씨다 (非是 此乃新羅人 金生所書也) " 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기면서
" 천하의 왕희지를 제외하고 어찌 이같은 신묘한 글씨를 쓸 수 있겠는가 ?
(天下餘右軍 焉有妙筆如此哉) " 라고 하면서 도대체 믿지 않았다 " 고
삼국사기에 전하고 있다.
위 서첩은 2003년 양각본이 발견된 <전유암산가서> 마지막 뒷 부분의 두쪽이다.
내용은 5언 율시인데... 漢學者 분들의 노고에 의하여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으며
그 내용 또한 고고할뿐 아니라 신선의 경지에 이른 仙風을 느낄수 있다.
' 聊述五行 傳於 後代 云彬 報德 ' 오행의 시를 지어 후대에 전하노라. 보덕.
召召嵩嶺北 避世洛城東 멀고먼 숭령의 북쪽, 세상을 피해 낙성의 동쪽에 왔네
門足陶潛柳 徑多原憲대 문에는 도연명의 버드나무 있고, 길에는 원헌의 쑥대 어지럽다.
壺裏澄明月 琴上引淸風 술병속에 명월은 뜨오르고, 거문고는 맑은바람 부르네
誰能遂名利 終日事王公 누가 명리를 따라 종일토록 왕공을 섬기겠는가.
보덕사 김생 서
위 글씨는 이백의 詩 '送賀賓客歸越' 이다. 원래 시와 몇 글자 틀리지만 소개해 봅니다.
鏡湖淸水 양淸波 경호의 맑은물 물결은 일렁이는데
狂客歸舟 逸興多 광객 돌아가는 배에는 멋진흥도 많겠네
山陰道士 如相見 산음의 도사를 만나게 된다면
應寫黃庭 換白鵝 응당 환정경을 베껴 흰거위와 바꾸겠지
고려 이인로는 김생의 글씨에 대해 " 용필이 신과 같아 초서도 아니고 행서도 아닌듯 한데
왕희지와 짝하여 ' 神品第一 ' 로 극찬하였다.
그리고 고려, 조선의 모든 문인 학자들이 그의 글씨를 찬미하였는데,
그중 특히 원교 이광사 (1705~1777) 는 그의 글씨를 보고는
"그 획이 마치 삼만근의 활을 당겨서 한번에 수많은 군사를 쓰러뜨릴 것같다" 고
(其劃如張 千鈞之弩 一發可碎千軍) 하였다
이백 (701~762), 두보 (712~770), 김생 (711~791) 등은 동시대 인물들로서,
이백의 시를 신라의 김생이 읽고 쓰고 하엿다는 것은 문화 교류가 매우 활발하였으며,
중국은 성당, 신라는 통일신라시대로 예술의 전성기를 살다간 詩書의 대가들이었다.
불교융성기 였던만큼 사찰의 기와나 비석등에 김생의 글씨가 조각난체로 자주 발견된다.
위 오른쪽은 조선후기 유명한 서예가 추사 김정희가 탁본한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첩'이다.
탁본후 추사는 감히 자기 호를 쓰지 못하고 '正喜拓本' 이라는 본명을 써 자신을 극히 낮추었다.
천년세월이 흐른 후에도, 김생은 후대에 선비들로부터 존경받는 진정한 '神筆'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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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암산가서' 의 원본과 해석입니다.
田遊巖山家序. 夫以養性閑庭, 閉蓬門而翫書史, 遊心江漢, 策黎杖而望煙霞.
白雲散而天地分, 靑山寂而林泉麗. 兀然獨坐, 披尋老子五千文. 寂寞幽棲, 平酌穢康一兩盞.
遊天四望, 雲積如帝鄕之樓. 暄地三思, 澗烟似秦川之水. 劉伯淪之隱處, 翠柳三行.
黃休陶之閑居, 靑松萬丈. 池分九曲, 時時流鸚鵡之盃. 花有六岐, 往往落鴛鴦之色. 橫琴窓下,
擬遺風彈種苗庭前. 用調蜂蜜, 五丸仙藥. 以充千日之飢. 九轉神丹, 延我百季之命下.
官性便山水志重, 琴書橫筵. 就巢父之河, 携酒往許由之水. 獨酌獨飮, 與山鳥而齎歌.
自吟自詠, 共叢花而競講. 樂矣美矣, 半醉半醒. 勸酒於嶺上之雲, 伴我於地中之鶴.
雖盃中葉綠溫, 眼外花紅. 金烏落於峯西, 玉嶺頹於席上. 驚風入竹, 知我專淘.
明月臨庭, 交人落託. 不遊四海, 獨坐山家. 聊述五行, 傳於後代云彬. 報德召召嵩嶺北,
避世洛城東. 門足陶潛柳, 徑多原憲蓬. 壺裏澄明月, 琴上引淸風. 誰能遂名利, 終日事王公.
報德寺 金生 書
전유암산가서(田遊巖山家序)
한가한 뜨락에서 성품을 양성하며, 봉문을 닫고 사서(史書)를 보고 있네.
마음이 강한(江漢)으로 달릴 때는, 지팡이를 짚고 아지랑이를 바라본다.
흰 구름 흩어지고 천지는 나눠졌네, 푸른 산은 고요하고 숲과 물은 곱구나.
우뚝이 홀로 앉아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5천문을 읽는데,
정적이 감도는 깊은 집에서, 예강(穢康)의 술 한두 잔 마셨네.
하늘에서 사방을 바라보니, 쌓인 구름은 황제의 누각과 같네.
따뜻한 곳에서 3번 생각하니, 시내의 안개가 진천(秦川)의 물처럼 보이네.
유백윤(劉伯淪)이 숨어사는 곳에, 푸른 버들은 3줄로 서있네.
황휴도(黃休陶)가 한가히 사는 곳에, 푸른 소나무 만장(萬丈)이나 널려 있고,
연못은 아홉 구비로 나뉘어 졌는데, 때때로 앵무잔을 권하네.
모가 6개인 눈꽃은, 종종 원앙 빛처럼 떨어지네. 창밑에서 거문고 비껴 안고,
그 유풍 흠모하며 꽃 심은 뜨락에서 퉁기었네.
꿀을 조리하여, 5개의 선약으로 천일 동안 굶주린 배를 채웠네.
그리고 9번 찐 신단으로 나는 백년간의 수명을 늘렸네.
관직생활을 하나 성품이 산수를 좋아하고, 자리에는 가야금과 책이 널려 있네.
소부(巢父)가 시내로 나가 술을 가지고 허유(許由)가 있는 물가로 갔네.
홀로 술을 따르고 마시며, 산새들과 노래하였네. 나 스스로 시를 읊으며,
많은 꽃들과 웃음을 겨루었네. 즐겁고 아름답다! 반쯤 취하고 반쯤 깨어,
산봉우리 위의 구름에게 술을 권하고, 나는 연못 속의 학과 벗하였네.
비록 술잔 속잎은 푸르렀고, 눈앞의 꽃은 붉기도 하다.
해는 산봉우리 서쪽에 지고, 옥령(玉嶺)은 자리 위에 무너졌네.
거센 바람 창문으로 들어와, 내가 몹시 취해 있는 것을 알고.
밝은 달은 뜨락에 임하여, 뜻이 큰 사람과 사귀었네.
사해를 유람하지 않고, 홀로 산속 집에 앉아.
이 오행(五行)의 시를 지어, 후세에 전하노라. 보덕(報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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