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필때 올릴려고 하던 것이 좀 늦었네요.
벚꽃은 화려하고 아름답기는 하나 너무 요란스럽다.
품위나 격조 그리고 향기로 비하면 梅花에 미치지 못한다.
<왼쪽은 단첩 매화이고, 오른쪽이 벚꽃(사쿠라)이다>
학명은 벚나무로 원산지는 제주도로 세계학회에 등록되어 있으며,
한국, 중국, 일본에 많이 자생하고 있는 장미과의 꽃나무다.
일본인들이 워낙 좋아해서 일본국화 사꾸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의도 벚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축제도 하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일본국화도 아닐뿐더러, 일본은 국화로 지정한 꽃이 없다.
좌는 중국의 벚꽃 인파이고 우측은 일본.
한국 여의도 벚꽃 축제인파다.
왜... 유독 벚꽃구경에만 저렇게 일시에 인파가 몰릴까 ?
그것은 벚꽃의 특이한 특성때문이다.
이세상 대부분의 꽃들은 개화기,만개기,낙화기를 약 10일씩 거친다.
그런데 유독 벚꽃만은 낙화기가 없이 가장 아름다울때 비바람이 불면 일시에 떨어진다.
벚꽃이 진다는 소리가 들리면 늦다. 꽃이 피었다하면 열일 제처두고 가서 구경해야 한다.
그래서 벚꽃축제에 인파가 매번 성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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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벚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려면 먼저 사무라이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무신정권(1170~1270)무인시대 100년간의 시대처럼,
일본에도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이후 도꾸가와 에이야스로 시작되는
막부시대 1604 ~1866년 (정권이 천황에게 넘어간 메이지시대 전까지의 260년간)의
에도막부시대에 귀족무인 정치집단이 사무라이들이다.
사무라이 정권이 무너질 즈음 태어난 니토베 이나조는
메이지시대에 서구문물을 받아들일 시기에 선진유럽과 미국에 유학한 선구자다.
신농업정책을 일본에 전한 농업교수이자 국제정치가 이며 사상가다.
1899년 미국에 유학할 당시 미국에 일본을 알리고자 영문으로 썼던 책이다.
이 책에서 사무라이 정신을 대변하는 덕목으로
義 , 勇 , 仁 , 禮 , 名譽 , 克己 , 그리고 비장한 죽음, 割腹 문화이다.
무엇보다 니토베는 무사도를 힘의 집단이 아니라 동양의 교양주의에 접목시킴으로서
19세기말 문명개방에 엄청난 속도로 서구문명을 흡수하고 있었던 풍조속에서
일본과 동양정신의 굳은심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도 명예를 중시하지만 양반이 아닌 "상놈"이라는 말을 더 듣기 싫어했다.
일본인, 특히 사무라이는 " 수치를 모르는 놈 " 하면 무척 싫어했다.
즉, 싸움에 지거나 명예에 손상을 입으면 수치를 논하기 전에,
떨어지는 사꾸라처럼 멋있게 할복자살 해야하는 것이 사무라이 정신이였다.
그러면서도 책의 저변에 깔려있는 사무라이 정신, 무사도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는
바로 군국주의 일본의 행보를 가능케하는 전체주의 이념의 씨았을 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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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먼저 정통사무라이에 관련한 일화하나 소개해봅니다.
일제강점기때 조선주먹의 자존심 김두한...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다.
일본은 고등계(보안대 격)에서는 김두한을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때마침 김두한은 일본장교를 패죽인 일로 악명높은 고등계에 잡혀들어
고문중에 기사회생으로 빠져나온다.
그때 그를 구해준 사람이 종로경찰서장 마루오카 경무다.
당시 일본경찰은 고등계나 헌병대보다 힘이 약한 일반 치안조직이다.
그렇다면 '마루오카'는 누구인가 ?
천황배 전 일본 유도대회 우승자이자 당시 유도계의 영웅이었다.
그가 일본의 막강한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후광을 업고 파견된 무도인 이었다.
골치아픈 조선 주먹들을 실력으로 제압하고 일본인의 상권을 보호하라는
특명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김두한을 구했는가 ?
마루오카는 義와 名譽를 중시하는 정통사무라이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마루오카가 종로로 부임후 곧바로 조선의 주먹들을 제거하며 영역을 넓히자
김두한은 정식으로 그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물론 싸움날짜 장소를 소문내 놓고 난 후이며 부하 유도선수에게
유도장에서 은밀히 도전시켜 보고 약점을 충분히 간파하고 난 뒤였다.
김두한이 그 약점을 노려 마루오카를 꺽자 소문은 종로바닥에 확 퍼진다.
마루오카는 수치를 알아야 하는 곤경에 처한 것이다.
이때 김두한은 그에게 형님으로 부르면서 "사실은 제가 졌습니다" 했다.
마루오카의 명예와 수치를 자신이 스스로 짊어지고 그의 명예를 살리게 된다.
그 일로 김두한의 운명이 그에 의해 구해지며, 의형제로써 맺어진 것이 유지되었다.
< 김두한과 그의 브레인 역을 맡았던 김영태 <LA 거주 >
훗날까지도 의도적이었는지는 알수없지만 그의 참모중에 김영태라는 유식한 사람이
사무라이의 본질을 알고 싸움전에 조목조목 조건을 내 걸었을 것으로 보이며,
마루오카는 당시까지 불패의 사나이로 무조건 조건에 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조선의 낭만파 주먹들은 비록 시대는 암울했지만 오늘날의 강패들이나
정치인들보다는 훨씬 더 멋있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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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시대 이전까지 약 10%에 달하던 사무라이들이 권력층에서 몰락하며
구심점을 잃고 방황하던 19세기 후반에 묘하게도 변질된 사꾸라정신으로
무장된 군국주의로 부활하며 패망을 고하는 진주만 전쟁을 발발시킨다.
< 미쓰비시에서 제조한 A6M4 ( 일명 "제로쎈" 전투기) >
그들이 지어부른 군가가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 일본의 남아로 태어났다면 散兵戰 의 벚꽃처럼 지거라 " 하고
대 일본제국을 위해 젊은 병사들은 사꾸라처럼 아름답게 죽으라는 것이다.
< 진주만 기습 - 영화 " 도라도라도라" 의 한장면 >
일본의 정치가들은 방황하는 정통사무라이들에게 변질된 팽창정책에
사꾸라정신을 집요하게 주입시켜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침략 등을 일삼고
결국은 일본 젊은이들에게 자살특공비행대 즉 '가미가제'를 출격시킨 것이다.
< 왼족은 실존사진이고 오른쪽은 영화의 한장면이다 >
그 주동자가 바로 해군 총사령관 야마모또 이다.
그는 미국 하바드 대학의 엘리트 출신으로 미국의 군사력을 잘 알고 있다.
영화의 장면이지만 그의 독백은 해석해 보면 의미심장하다
" 나는 잠자는 사자를 깨워 끔직한 결과를 낳게 되는것이 두렵다 "
그후 그가 염려한데로 일본은 미국으로 부터 원자폭탄 2방을 얻어 맞는다.
진주만 기습때 가라앉은 애리조나 항모위에 기념관이 세워저 있다.
미국은 단 한번의 실패를 이렇게 잘 보존하며 기억해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임진년, 정유년, 일재강점기, 독도 등 끊임없이 도발해오고 있다.
언제든 죽음을 각오하고 사꾸라 정신으로 무장한 사무라이들이 닥칠지 모른다.
특히, 야마모토 사령관처럼 또라이 사무라이가 권력을 잡으면 문제는 심각해 진다.
그래서 각국의 권력이 바뀔때 주변국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아베가 한국의 옆구리에 수시로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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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에는 여전히
사무라이 덕목을 생명처럼 여기는 존경받는 인물이 무수히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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