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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밝게 빛나고 우리 사이 정감이 감도네 明月有光人有情 | |
훗날에 그대가 그리우면 나는 저 달처럼 別後相思人似月 | |
하늘에 떠서 구름 사이로 그대를 찾아 보렵니다. 雲間水上到層城 1. 李冶(이야) | |
새벽녘 등불은 얼룩진 화장 비추는데 五更燈燭照殘粧 | |
이별을 말하려니 먼저 애간장이 끊어지네. 慾話別離先斷腸 | |
달도 다 진 새벽 녘에 집을 나서보니 落月半庭推戶出 살구꽃 성근 그림자 치마자락에 가득하구나 杏花疎影滿衣裳 2. 鄭礝(정연)
여명은 밝아오고 달은 기우는데... 이별의 아픔을 아는지 항아는 발길을 멈추건만, 달무리에 앞을 가려 차마 바로 보지 못한다. 기약없는 이별에 발길은 갈길을 헤메이는구나! | |
콧수염도 나지않은 엣된 젊은이가 데이트 중이다. |
꽤나 큰 중치막에 제법큰 갓을 쓴 것으로 봐서 아버지의 복장을 입고 나온것으로 보인다. |
둘 다 고급스런 신발은 제법 잘나가는 권세가나 부자집 아들임을 단박에 알 수 잇다. |
제시를 담벼락에 흘려 쓴 것으로 봐서 금지구역, 즉, 금지된 만남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임을 넌지시 일러준다. |
조선시대 흙 담벼락에 소피보는 것에 골머리를 썩히었다는 것이 기록에도 있는 것을 보면 신윤복의 기지가 엿보인다. |
단순한 그림 같지만 보면 볼수록 베일에 가려진 의미심장한 부분도 많고 해서, 내심
혜원그림을 집중연구해 보기로 하고 그의 그림들을 감상하며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2011년 아래의 그림과 함께 월하정인을 그린 시기를 방송과 언론에서 발표함.
1793년 8월 21일 (음력 7/15일)에 그린것으로 천문학자가 밝혀 냈다고 한 기사내용 임.
먼저 위의 내용들 중 부분월식이 발생할 때 생기는 달의 모양은 맞다.
이 그림의 달(월식)은 천하의 오주석님도 2000년 일간지에 초승달로 해설했다가
일반 독자로부터 지적을 받고 혼줄이 난적이 있었다. 즉,
통상 저런 모양의 달은 천지개벽이 되면 모를까 절대로 관찰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로 편지를 주고 받던 중 "혹여~부분월식이 발생할 때는 그럴수도 있다"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부분월식 중에 발생한 현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夜三更의 달의 위치는 아니다. 아무리 남중고도라 해도 설득이 안된다.
달이 담장 근처까지 기울었다는 것은 이미 4경을 넘어 5경에 접어든 무렵이다.
혜원의 그림 "야금모행" 에도 새벽 시간대의 그믐달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또 하나 삼복더위 7,8월이면 담장의 넝쿨잎이 무성히 피어 담장을 뒤덮어야 하는데...
위 그림은 무더운 한여름이 아니라 잎이 나기 시작하는 4,5월경으로 생각 됨.
嘗春野興 - 꽃피는 봄날
젊은이들의 복장을 관찰해 보세요. 중치막이 몸 사이즈에 딱 맞죠? 그리고
그 옆에 앉아있는 출사를 한 어른은 복장의 품이 넉넉하게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혜원은 젊은 선비의 복장을 크거나 작지 않게 정확하게 그립니다.
월하정인의 젊은이가 입은 옷은, 자기 옷이 아니라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尼僧迎妓 - 늘어진 수양버들 잎이 싹이나는 어느 봄날의 그림
여인의 복장과 신발 관찰을 관찰해 보면 월하정인의 그림과 같습니다.
또 하나 혜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팔자 걸음 인데...
아마도 거드럼을 피우며 걷는 양반들을 흉내 내는것이 아주 유행했었나 봅니다.
어느시대건 유행은 있게 마련이죠...
다시~ 월하정인 속의 달을 잘 관찰해 보실까요? 분명히~ 구름은 아니고,
달무리를 희미하게 그려 넣었습니다. 승정원 일기에는 月暈(달무리)를 정확히 기록했습니다.
2014년 10월 8일 부분월식과 개기월식이 연속해서 진행되는 현상이다
( 좌측에서 네번째가 혜원이 관측한 것과 같은 부분월식(18:00~22:30)의 실제모습 )
시간대는 월하정인의 부분월식과 다르지만 달의 모습은 정확히 대조해 볼수 있다.
아래 블로그는 위 사진의 출처입니다. - 블로그님께 양해 구합니다.
혹자들은 야삼경에 데이트장면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어서 야삼경에 적발되면 곤장 30대, 2경 20대, 4경 10대 다. 혜원의 그림 중 달이 있는 그림은 통금이 끝나는 무렵 5경 즉, 3~5시 쯤이다. 위 그림의 장면은 당연히 통금이 끝나는 무렵 5경 이다.
야삼경을 지나 달이 기울때까지, 단 두 사람만 아는 달콤한 사랑을 나누었으리 !! 이제~ 달도 기울고 여명이 밝아오니, 남의 눈에 뛸까 황급히 이별을 종용하는 장면이다. 혜원은 부분월식의 순간을 그려 넣음으로서 이미 날짜와 시간표기를 완료했다. 월식이 발생하는 기이한 현상을 반드시 누가 기록한다는 것을 짐작했음이 틀림없다. 화가가 그림을 그려놓고 또 다시 "야삼경" 이라고 시간대를 거듭 표기 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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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그믐달이 뜨는 야금모행의 달과, 보름달이 지는 월하정인의 달의 위치가 같다. 두 그림 다 통행금지가 끝나는 5경 (3시~5시)의 상황이다. 그렇다고 보면 | ||||||
당시 통행금지를 잘 준수하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 ||||||
그렇다면 왜? 화제에 헷갈리게 월침침(새벽)과 야삼경(밤12시경)을 써 넣었을까 ? | ||||||
혹여 ~ 그림을 감상할 때 화제의 글에 잘못 접근하면 황당한 그림해석을 하게 되는데... | ||||||
'夜三更' 이라는 글자에 미혹하면 '월침침'의 기운달도 다시 중천으로 갖다놓는 격이 된다. 제가 아는바 화제는 직유법보다는 은유나 암시법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볼때,
'兩人心事兩人知'라는 글귀는 그 당시 대단히 유행했던 말 그대로 불멸의 명문장으로 선비는 물론 한량들은 기방출입 때 수없이 읊조리며 인용시도 많이 지었을 것이고,
그러면 위 화제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수 있는 시와 그 원문을 알아보자. 고 오주석님의 명저 '한국의 미,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그림' 에서 참고 했습니다.
자 ~ 그럼 이제 <승정원 일기>를 찾아서 그 진위를 가려 봅시다.
승정원 일기에는 '부분월식' 이라는 표기는 달리 없고 '월식'으로만 표기하고 있는데 ... 지하월식(달뜨기전)이나 구름때문에 관찰할 수 없을 때도 월식은 잘 기록되어 있슴. 그런데 아쉽게도 1784년에는 월식기록을 찾지 못했다. <승정원 일기 원본 참조 >
월식은 정조 때(1776~1800) 10회, 순조(1800~1826까지)12회, 50년간 총 22회 발생함. 그중 달무리가 낀 날이 (1779, 1791, 1798) 모두 정조때로 3회 발생하였는데, 1791년은 진시~유시까지 달무리 , 3경~5경에 월식이 분리되었으니 아닐 것이고, 1779 년과 1798년 두차례로 달무리와 월식이 동시에 발생된 것으로 기록 됨.
1779년은 혜원의 나이 약21세 10월 16일이다. 양력 11월 가을 1798년은 혜원의 나이 약40세 4월 14일 이다. 양력 5월 봄 그럼 위 그림이 낙옆이 지는 가을이냐 ? 잎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이냐 ?
부족하지만 저의 분석과 자료를 첨부하오니 독자 여러분께서 판단해 보시길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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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정조부터 순조 26년까지 50년간 발생된 월식의 승정원일기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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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때에는 그림과 관련 될 만한 월식의 내용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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